千鏡子 - 고약한 여자
千鏡子(1924-2015, 91살) 화백이 금년
8월에 이국땅 뉴욕에서 별세했다.
전남고흥에서 출생했으며 본명은 千玉子이다.
전남여고를 마치고 결혼하라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경여자미술대학에 입학했다.
박복하게 세 번 결혼했는데 첫 남편과는
사별, 둘째, 셋째 남편과는 이혼했다.
홍익대 교수(1954-1974)를 지냈다.
전쟁직후 여자로서 대학교수를
지낸 것은 대단한 관록이다.
1951 <生態>로 화단에 등장했다.
뱀이 우글거리는 이 그림은 정말 쇼킹하다.
단번에 화단에 천경자의 이름을 각인시켜 주었다.
1955 <情>으로 國展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꽃과 여인>을 그렸다.
그녀의 그림은 작품 숫자가 많지 않아서 미술품 시장에서
희귀작품, 高價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소장 <미인도>
작품으로 위작시비가 붙었다.
千화백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내 작품은 내 혼이 담겨 있는 핏줄이나 다름 없습니다.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작품 사인과 연도 표시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 보는 일은 없습니다.
붓을 들기 두렵습니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은 과학적 분석,
확실한 취득 경위를 들어
진품임을 입증했고 법원에서는 판단불가로 판결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千화백은 예술원
회원을 탈퇴하고 絶筆을 선언했다.
미국으로 건너갔다.
1998년 소장품 93점을 서울시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값으로 따지면 3천억원에 해당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이 그림보존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2013년 기증했던
작품들을 돌려달라고 딸이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사건도 있었다.
소설가 박경리 여사는 千화백더러
고약한 예술가라고 꼬집었다.
꿈은화폭에있고/시름은 담배에있고/
용기있는 자유주의자/정직한 생애
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
↑외할아버지, 1943, 鮮展입선작품
↑生態, 1951, 화가의 등단을 알린 작품이다.
↑목화밭, 1954
↑情, 1955,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품
↑전설, 1961
↑歡,1962
↑여인들,1964
↑길례언니, 1973
↑孤, 1974
↑이디오피아의 여인들, 1974
↑내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976
↑내슬픈전설의22페이지, 1977, 千화백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천경자-미인도, 1977, 위작 시비가 붙었던 작품
千화백은 사인과 연도 표시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림의 크기가 29x26cm, 소품이라 쉽게 위작의 표적이 될법도 하다.
↑ 6월의 신부, 1977
↑탱고의 황혼, 1978
↑황금의 비, 1982
↑두상, 1982
↑여인의 詩, 1985
↑閏四月, 1987
↑누가울어 I, 1988
↑누가울어 II, 1989
↑볼티모어에서, 1993
↑우수의 티나, 1994
↑여인, 1994
↑러시모어 국립공원, 1995
↑황혼의 통곡, 1995
이 작품은 千화백이 절필을 선언하기 직전에 그린 것으로 여겨진다
↑천경자展 포스터, 서울시립미술관,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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