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유래
1. 바둑 역사
바둑의 기원은 누구에 의해서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실하게 전해지는 문헌이 없어 알길이 없다.
《박물지(博物誌)》에 '요(堯)나라 임금이 바둑을 만들어 아들 단주(丹朱)를 가르쳤다',
또 말하기를 '순(舜)나라 임금이 아들 상균(商均)의 어리석음을 깨치기 위하여 바둑을 가르쳤다',
또 '그 법이 지혜 있는 자가 아니면 잘 할 수가 없다'고 하였고, 《태평어람(太平御覽)》에도
요나라 임금이 아들 단주에게 바둑을 가르쳤고, 단주가 바둑을 썩 잘 두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 상고 때부터 바둑이 존재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논어(論語)》에 공자가 이르기를 '바둑 두는 것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어진 일이다
(以奕爲爲之猶賢乎己)'라고 한 것으로 보아 고대
중국에서는 많이 보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魏)나라 한단순(邯鄲淳)의 《예교(藝敎)》,
오(吳)나라 위소(韋昭)의 《박혁론(博奕論)》,
송(宋)나라의 《오잡조(五雜俎)》 등의 문헌에는
한위(漢魏) 이전의 바둑판은 17×17로
(路)였다고 적혀 있다.
이 기록내용은 1953년 중국 한(漢)나라의 망도
(望都:河北省 保定 부근)에 있는 고분을 발굴한 결과,
그 안에서 17×17로 된 돌로 만든 바둑판이
출토됨으로써 사실임이 밝혀졌다.
오늘날 19로반(路盤)이 쓰이게 된 것은
당(唐) 때부터라고 알려졌다.
2. 한국 전래
한국에 바둑이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로 보인다. 《신당서(新唐書)》 '고구려전'에 '호위기
투호지희(好圍棋投壺之戱)'라고 하였고, 《후주서(後周書)》 '백제전'에 '잡희연 대상혁기
(雜戱然大尙奕)'라 하여 모두 바둑을 좋아하고 잘 두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삼국시대에는 조야에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으며,
가장 오래 된 기록으로 《삼국사기》의 '백제본기(百濟本紀)' 개로왕조(蓋鹵王條)에
나오는 중 도림(道琳)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한창 국세를 확장하고 있던 고구려의 장수왕은 남쪽으로 뻗어내려가려고 하였으나,
지금의 경기 광주(廣州)에 도읍을 정하고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던 백제가 방해가
되어 여의치 못하여 호시탐탐하던 중, 고구려에서도 바둑을 잘 두기로 이름난 도림이
백제의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장수왕에게 아뢰어 첩자가 되기를
자청하여 백제에 거짓 망명을 하였다.
백제에 와서 개로왕과 바둑을 두면서 친하게 되자 도림은 개로왕에게 진언하여
왕릉·성곽 등을 개수하도록 하고, 그 결과 국고를 탕진시켜 백성들의 민심을 잃게 하였다.
이 보고를 들은 고구려는 대군을 동원하여 백제를 치자, 패배한 개로왕은 피살되고
태자 문주(文周)는 몇 사람의 심복과 웅진(熊津:지금의 공주)으로
도망가 임시 도읍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