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시조

모란꽃이 우는 날 - 유치환

황령 2011. 5. 1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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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꽃이 우는 날 -  유치환 

 

각은 종일을 봄비와 더부러 하염없어

뒷산 솔밭을 묻고 넘쳐 오는 안개

모란꽃 뚝뚝 떨어지는 우리 집 뜨락까지 내려.

 

설령 당신이 이제

우산을 접으며 반긋 웃고 사립을 들어서기로

내 그리 마음 설레이지 않으리.

이미 허구한 세월을

기다림에 이렇듯 버릇 되어 살므로.

 

그리하여 예사로운 이웃처럼 둘이 앉아

시절 이야기 같은 것

예사로이 웃으며 주고받을 수 있으리.

이미 허구한 세월을

내 안에 당신과 결하여 살므로.

 

모란은 뚝뚝 정녕 두견처럼 울며 떨어지고

생각은 종일을 봄비와 더부러 하염없어

이제 하마 사립을 들어오는 옷자락이 보인다.

 

<청마시집>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