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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모르는 원님

황령 2010. 10. 22. 11:42

                                          

    글도 모르는 원님

 

                                                                                    신 현 배(시인.아동문학가)

 

옛날 어느 고을에 원님이 새로 부임해 왔습니다.

이 원님은 아주 미련하고 무식 했습니다.

원님은 부임 하자마자 육방, 즉 이방, 호방, 예방, 병방, 형방, 공방과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먼저 이방에게 물었습니다.

“네 성이 무엇이냐?” “예. 소인은 이가입니다.”

“흠, 이가라........ .”

원님은 붓과 종이를 가져오라고 해서 종이에 이 한 마리를 그렸습니다.

글을 몰라 이방의 성을 잊지 않으려고 이를 그린 것입니다.

이방을 비롯한 육방 향리들은 그림을 보고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다음에는 호방에게 물었습니다.

“네 성이 무었이냐?” “예, 소인은 박가입니다.”

“흠, 박가라........ .”

원님은 눈을 지긋이 감고 잠시 생각하더니,

이윽고 종이에 둥그런 박을 그렸습니다.

“예방은 성이 무엇이냐?” “예, 소인은 김가입니다.”

“흠, 김가라 ......... .”

원님은 종이에 말린 김을 그렸습니다.

원님은 병방, 형방, 공방에게도 차례로 성을 물어 짚신, 손, 소를 그렸습니다.

병방은 신가, 형방은 손가, 공방은 소가였던 것입니다.

원님이 없는 자리에서 육방 향리들은 한숨을 푹푹 쉬었습니다.

“걱정이야. 글도 모르는 우리 고을 원님이 우리 고을을 어떻게 다스릴지 .”

“누가 아니래.”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우리 원님의 가까운 친척이 높은 벼슬아치래.

그러니까 친척덕에 원님이 되었겠지.”

“어쨌든 큰 일이야. 우리 고을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었어.”

육방의 염려대로 원님은 무엇 하나 자기 힘으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도움을 받아 고을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농부 한 사람이 찾아와서 원님에게 호소했습니다.

“저의 집 소가 간밤에 갑자기 죽었습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원님에게 달려왔습니다.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원님이 버럭 고함을 질렀습니다.

“이놈아, 그까짓 소 한 마리 죽은 걸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냐?

더구나 내 소가 죽은 것도 아니고 네놈 소가 죽었는데.......... .”

원님은 농부를 야단쳐서 내쫓아 버렸습니다.

“별놈 다 보겠네.”

원님은 점심을 먹으러 관사로 갔습니다.

관사에서 점심을 먹으며, 원님은 방금 있었던 일을 아내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소가 죽든 말이 죽든 무슨 상관이야. 안 그렇소?”

원님이 그렇게 말하자, 아내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건 잘못하신 겁니다. 상관없다니요? 상관 있습니다.

백성은 자기에게 중대한 일이 생기면 원에 호소합니다.

그렇게 하여 원의 판결에 따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가? 난 그것도 모르고........ .”

원님은 얼굴을 붉히고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농부를 다시 불러서 ‘소가 죽었으면 가죽은 벗겨서 바치고,

고기는 동네 사람들에게 팔아라. 그래서 생긴돈으로 송아지를 한 마리

사서 길러 큰소로 만들어라.’ 라고 말씀하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알겠소. 시킨대로 하리라.”

 

원님은 관사에서 나와 농부를 다시 불렀습니다.

“농부는 들어라. 소가 죽었으면 가죽은 벗겨서 바치고,

고기는 동네 사람들에게 팔아라. 그래서 생긴 돈으로 송아지를

한 마리 사서 길러 큰소로 만들어라.”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농부는 기쁜 얼굴로 절을 수없이 하고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또 다른 농부 한 사람이 와서 원님에게 호소하였습니다.

 

“간밤에 저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어찌 하오리까?”

원님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오른듯, 눈을 번쩍뜨고 말했습니다.

“농부는 들어라. 어머니가 죽었으면 가죽은 벗겨서 바치고

고기는 동네 사람들에게 팔아라.

그래서 생긴 돈으로 여자아이를 사서 기르면

너의 어머니가 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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